A Place to Remember : 우리는 왜 시칠리아로 떠나는가
Vol: August 2026 · Section: City & Brand · Editor: 오주석
Editor’s Letter
한여름이 끝을 향하는 8월, 시칠리아 에트나(Etna)의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에 관한 와인 칼럼을 마쳤습니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 무더위는 우리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8월의 마지막 주 새로운 에너지로 시작하세요.

오주석의 더블유 모먼츠_에트나의 네렐로 마스칼레제
얼마 전 에트나는 다시 불을 뿜었습니다. 화산재가 하늘을 덮은 사이에도 산의 북쪽 비탈에서는 포도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불을 뿜는 산 아래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듭니다.
그렇다고 시칠리아를 에트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섬에는 오래된 신화와 도시, 여러 문명이 남긴 건축과 음식, 영화가 만든 장면과 여행자들이 돌아와 쓴 이야기가 겹쳐 있습니다. 시칠리아는 하나의 풍경보다 수많은 이야기로 기억되는 장소입니다.
나는 아직 시칠리아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언젠가 떠날 곳을 묻는다면, 나 역시 시칠리아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아직 그곳에 없는 나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A Doorway] : 이야기에서 발견한 입구
2007년 가을, EBS 여행 프로그램 제작진이 소설가 김영하에게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시칠리아라고 답했다. 그 여행은 훗날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가 되었고, 다시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라는 제목으로 독자에게 돌아왔다.
이 짧은 일화가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에게 시칠리아는 이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 섬은 영화와 책, 먼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로 향하는 입구를 발견한다.
[Layers of Sicily] : 하나의 섬에 겹쳐진 수많은 이야기
시칠리아는 많은 이야기의 배경이다.
《대부》는 가족과 권력의 어두운 기억을 이 섬에 남겼다. 《시네마 천국》은 작은 극장과 광장, 영화가 사람을 이어주던 시간을 보여줬다. 오래된 그리스 신화와 《오디세이아》의 항해도 시칠리아의 바다를 맴돈다. 최근의 영화와 드라마는 아름다운 호텔과 해변, 그 풍경 뒤에 숨은 사람들의 욕망을 다시 이 섬 위에 올려놓는다.
여행자들이 남긴 이야기는 더 다양하다.
누군가는 팔레르모(Palermo)의 시장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카타니아(Catania)의 검은 화산석 거리를 걷는다. 고대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 시라쿠사(Siracusa)와 아그리젠토(Agrigento)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크 건축을 따라 노토(Noto)와 모디카(Modica)를 여행하거나, 초콜릿과 피스타치오, 아란치니와 와인을 통해 섬을 기억하기도 한다.
이들이 경험한 시칠리아는 모두 다르다.
동시에 브랜드는 하나다. 시칠리아.
그곳을 찾아가는 오디언스는 저마다 다른 기대를 품고 출발한다. 같은 섬에 도착해도 서로 다른 도시를 걷고, 다른 음식을 맛보고, 다른 장면 앞에서 멈춘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만 가지의 경험은 하나의 정답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층층이 겹쳐지며 시칠리아라는 더 큰 브랜드를 이룬다.
하나의 장소 브랜드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이야기가 같은 장소의 이름 아래 쌓이며 깊어진다.
Strategic Alignment : 하나의 시칠리아, 서로 다른 경험
Momentum = f(Brand, Audience, Relationship) × Alignment
- Brand: 시칠리아
- Audience: 영화·역사·도시·음식·자연 등 서로 다른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
- Relationship: 타인의 이야기로 알게 된 섬이 자신의 경험을 가진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
- Alignment: 서로 다른 경험들이 시칠리아라는 큰 이름 아래 연결되고 다시 새로운 여행자를 부르는 것
시칠리아의 브랜드는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다. 오래된 신화 위에 영화가 놓이고, 영화 위에 여행자의 기억이 쌓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여정을 시작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가 이 섬을 배경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새로운 책과 사진, 음식과 여행기가 더해질 것이다. 아직 시칠리아에 닿지 못한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이 들어갈 하나의 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칠리아는 과거의 이야기를 보존하는 섬에 머물지 않는다. 앞으로 떠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장소가 된다.
BARAM Insight
장소 브랜드의 힘은 모두에게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들이 하나의 장소 이름 아래 겹쳐질 때 브랜드는 더 깊어집니다.
Epilogue
나는 아직 시칠리아에 닿지 못했습니다.
김영하처럼 언젠가 떠날 곳을 묻는다면, 나의 대답도 시칠리아입니다. 다만 이미 쓰인 이야기를 확인하는 여행에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곳에서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꿈꿉니다.
그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에트나의 화산과 검은 흙에서 자라는 포도 이야기를 먼저 준비했습니다. 불을 뿜는 산 아래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온 네렐로 마스칼레제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는 먼저 그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아직 닿지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는 장소가 있습니까?
와인에서 배우는 브랜드 혁신_오주석의 더블유 모먼츠에서 더 많은 이야기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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