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의 가상 인터뷰:King of Polymath가 전하는 21세기 네오 폴리매스의 길
AI 시대의 탐험가, 네오 폴리매스를 소개합니다
시공간을 넘나든 특별한 만남
조선의 King of Polymath, 세종대왕과의 가상 인터뷰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民惟邦本 本固邦寧)" — 한글 창제, 천문 관측, 음악 정비, 농서 편찬, 의학 집대성까지. 단 한 사람의 군주가 어떻게 이토록 넓은 영역을 통섭할 수 있었을까요. 1418년부터 32년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세종대왕님을, 21세기 네오 폴리매스의 관점에서 만나봅니다.
인터뷰
Q1.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시는지 친구에게 소개하듯 편하게 알려주세요!
세종: 허허, 친구처럼 부르라니 송구하면서도 반갑구나. 내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고… 우선 본업은 조선의 임금이지. 정사를 돌보는 게 첫째일세.
그런데 임금 노릇만 해서는 백성의 삶이 나아지질 않더군. 그래서 집현전을 세워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고, 우리말을 적을 글자(훈민정음)도 만들고 있다네. 농사 잘 짓는 법을 모은 『농사직설』,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로 병을 다스리는 『향약집성방』, 또 의서를 집대성한 『의방유취』 편찬도 같이 진행 중이지.
장영실에게 자격루며 측우기, 혼천의를 만들게 해서 하늘의 이치를 살피고, 박연에게는 우리 음악을 정비하게 하고, 정간보(井間譜)라는 새 악보도 함께 고안했네. 군사기술이나 법전 정비도 빼놓을 수 없고…. 한마디로 '백성을 이롭게 하는 모든 학문'에 손을 대고 있다 하겠네.
Q2. 언제부터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게 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세종: 어려서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성미였지. 한 권을 백 번 읽는 버릇이 있어서 부왕(태종)께서 책을 빼앗으신 적도 있다네. 허허.
본격적인 전환점은 1418년, 스물둘에 임금 자리에 오르면서였네. 막상 옥좌에 앉고 보니 깨달은 게 있어. 임금이 한 분야만 알아서는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이지. 농사를 모르면 농민의 고충을 모르고, 천문을 모르면 농사철을 못 정하고, 음악을 모르면 예법이 흔들리고, 글자를 모르면 억울한 백성을 도울 수가 없어.
그래서 결심했지. "내가 모든 분야를 깊이 알 수는 없지만, 모든 분야의 가장 잘하는 사람을 모을 수는 있다." 집현전이 바로 그 그릇일세. 학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를 동시에 다루게 된 것이지.
Q3. 서로 다른 분야가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 있나요? 그때 기분이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세요!
세종: 아, 이 질문은 정말 신이 나는구먼. 그런 순간들이 내 평생을 지탱한 동력이었네.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훈민정음을 만들 때였지. 처음엔 그저 '백성이 글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행정의 문제로 시작했어. 그런데 글자를 만들려고 보니, 음운학(중국 운서 연구)과 천문학(천지인 삼재 사상), 성리학(음양오행), 그리고 혀와 입의 모양을 살피는 일종의 해부학까지 모두 필요하더군.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이고, 'ㅁ'은 입의 모양이지. 그 모든 학문이 '백성을 위한다'는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 온 우주가 하나로 통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네.
또 하나 잊지 못할 것은 음악과 천문이 만난 순간일세. 박연과 함께 아악을 정비하다 보니, 음의 높낮이를 정할 기준 척도가 필요했어. 그런데 그 기준이 되는 황종율관(黃鐘律管)의 길이가 결국 도량형의 표준과 연결되고, 도량형은 다시 천문 관측의 기준과 맞물리더군. 음악, 도량형, 천문이 하나의 체계 안에 있다는 깨달음. 그때 "아, 학문은 본디 하나였구나" 했지.
Q4. 평범한 하루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어떻게 여러 일들을 소화하시는지 궁금해요!
세종: 하루를 워낙 빡빡하게 쓰는 편이라 신하들이 걱정을 많이 하지. 허허.
새벽에 일어나 경연(經筵)부터 시작하네. 학자들과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지. 이게 그냥 공부가 아니라, 그날의 정책 판단을 위한 사고 훈련의 시간이야. 아침 정사를 본 후에는 상참(常參)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윤대(輪對)라 하여 하급 관리들까지 돌아가며 직접 만나 의견을 듣지.
오후에는 집현전에 들러 학자들과 진행 중인 연구 진척을 확인하고, 종종 직접 토론에도 끼어드네. 저녁 식사 후에도 책을 놓지 못해 야대(夜對)라는 야간 강론을 자주 열었지. 하루에 책을 읽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네.
비결이라면 "사람을 통해 일하는 것"일세. 모든 걸 내가 직접 하려 들면 무너지지. 장영실에겐 천문기기, 박연에겐 음악, 정초에겐 농서, 정인지·신숙주에겐 어문 연구를 맡기되, 나는 그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네. 핵심은 '내가 다 한다'가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하는 사람들을 모은다'였지.
Q5. 가장 힘들거나 당황스러웠던 순간이 있다면? (실패담도 환영!)
세종: 흠… 실패담이라. 한두 가지가 아닐세.
가장 뼈아팠던 건 훈민정음 반포를 두고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이 강하게 반대 상소를 올렸을 때였지. 내가 가장 아끼던 학자들이,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을 정면으로 반대한 거야. "중국과 다른 글자를 만드는 것은 사대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논리였지. 마음이 무너졌네. 며칠을 잠 못 이루며 고민했어.
또 4군 6진 개척과 여진 정벌 과정에서 수많은 군사와 백성이 희생된 일도 평생의 짐일세. 영토를 넓혔다는 자부심보다, 그 과정에서 잃은 목숨들이 더 무겁게 다가왔네.
개인적으로는 건강 관리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후회야. 책에 빠져 운동을 게을리하고, 고기 없이는 식사를 안 하던 식습관 탓에 당뇨와 안질로 평생 고생했지. 말년에는 거의 앞이 보이지 않았어.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내 몸 하나 못 챙기면 결국 다 멈추게 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네.
Q6.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본인만의 방법이나 비결이 있나요?
세종: 내 학습법은 '백독백습(百讀百習)'일세. 한 권을 백 번 읽고 백 번 익힌다는 뜻이야. 좋은 책은 한 번 읽어 머리로 알고, 열 번 읽어 몸에 새기고, 백 번 읽어 그 책의 저자가 되는 거지.
여기에 더해 세 가지 원칙이 있다네.
첫째, '질문하며 읽기'.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이게 우리 조선의 현실에 맞는가?", "백성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묻는 거야. 그러면 같은 책도 매번 다르게 보이지.
둘째, '전문가에게 직접 묻기'. 모르는 분야는 그 분야 최고의 사람을 불러 머리를 숙이고 배웠네. 신분의 천함을 따지지 않았어. 장영실은 본디 관노 출신이었지만, 그의 손재주를 알아본 후로는 그가 내 스승이었지.
셋째, '만들어보며 익히기'. 글자를 만들 때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직접 발음해보고, 혀와 입의 움직임을 관찰했지. 천문 의기도 도면만 보지 않고 실제 제작 과정에 참여했어. "앎이란 결국 만들어보는 데서 완성된다(知行合一)"는 게 내 신념일세.
Q7. 2026년에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세종: 허허, 내가 2026년에 살아 있다면 정말 신날 일이 많겠구먼.
가장 해보고 싶은 건 'AI라는 새 학자와 함께 일하는 일'이야. 너희들이 만든 그 인공지능이라는 것 말이지. 내가 집현전을 만든 뜻이 무엇이었나? 한 사람의 머리로는 모든 학문을 다 할 수 없으니, 여러 학자의 머리를 모은 것 아닌가. AI는 내가 꿈꾸던 '집현전의 21세기 버전'으로 보여. 다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건, AI도 결국 도구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것. 그것이 어떤 백성을 이롭게 하는지를 항상 물어야 하네.
두 번째로는 '전 세계 모든 언어를 한자리에서 비교 연구하는 일'을 해보고 싶네. 훈민정음을 만들 때 몽골 파스파 문자, 산스크리트, 일본 가나까지 모두 참고했지만, 자료가 한정되어 아쉬움이 많았어. 이제는 세계 모든 문자의 자료를 모아 인류 보편의 음성 표기 체계를 다시 한번 설계해보고 싶군.
마지막은 건강일세. 이번엔 꼭 운동도 하고, 채소도 좀 먹어보겠네. 허허허.
Q8. 가족이나 친구들은 뭐라고 하나요? 재미있는 반응이 있었다면 공유해주세요!
세종: 가족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푸근해지는구먼.
소헌왕후는 늘 "전하, 책 좀 그만 보시고 잠을 주무세요"라고 하셨어. 한밤중까지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으면, 등불을 직접 끄러 오기도 하셨지. 허허. 그러면서도 내가 새 글자를 만들고 있다 하니 누구보다 응원해 주셨다네.
큰아들 향(문종)은 "아바마마는 도대체 언제 쉬세요?"라며 진지하게 걱정하더군. 그 아이가 조용하고 학문을 좋아해서, 내 후계자로 키우면서 가장 자주 한 말이 "몸을 아껴라, 향아"였네. 내가 하지 못한 충고였지.
신하 중에는 황희 정승이 가장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지. 내가 새로운 일을 벌일 때마다 "전하, 또 무엇을 시작하시려 합니까…" 하고 한숨을 푹 쉬시면서도, 정작 일이 시작되면 누구보다 든든하게 뒷받침해주셨네. 허허, 그분 없었으면 지금의 조선은 없었을 거야.
가장 웃겼던 건 어느 날 어린 신하 하나가 진지하게 묻길래, "전하께서는 머리가 두 개가 아니십니까?" 하더군. 그때 답해줬지. "머리는 하나일세. 다만 묻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야." 허허허.
Q9. 지금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딱 한 가지만 조언한다면?
세종: 딱 하나라… "네가 풀고 싶은 백성의 문제는 무엇이냐?"라고 묻고 싶네.
여러 분야를 한다는 것은 자칫 욕심으로 비칠 수 있어. 하지만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가 먼저 정해지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모든 학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네.
내가 천문, 농학, 의학, 음운학, 음악을 동시에 한 것은 그 모든 분야가 멋있어서가 아닐세. "백성이 굶지 않고, 아프지 않고, 억울하지 않고, 즐거이 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한 가지 질문이 그 모든 분야를 부른 거야.
그러니 지금 시작하려는 그대에게 묻겠네. 그대가 풀고 싶은 단 하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을 정하고 나면, 그대도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이 될 걸세. 화려해 보이려고 여러 분야를 펼치지 말고, 풀고 싶은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분야로 나아가게 되는 사람이 되시게.
Q10. 네오 폴리매스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세종: 21세기의 벗들에게.
너희들이 사는 시대가 참으로 부럽구나. 누구나 글자를 알고, 누구나 책을 읽고, 누구나 자기 생각을 세상에 펼칠 수 있는 시대. 내가 훈민정음을 만들며 꿈꾸던 그 세상이 너희 앞에 펼쳐져 있어.
다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구나. 지식이 많아지고 도구가 발달할수록,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잊지 말라는 거야. 나는 평생 단 하나의 질문만 붙들고 살았네. "이것이 어리석은 백성에게 어떻게 닿을 것인가?" 한글도, 측우기도, 농사직설도, 결국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도구였지.
너희가 AI를 다루든, 여러 사업을 동시에 펼치든,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든 — 그 모든 것이 향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늘 묻기 바라네. '네오 폴리매스'라는 좋은 이름을 너희들이 만들었구나. 그런데 그 폴리매스의 끝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하지 않겠나.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21세기 집현전'을 만들어보는 일일세. 분야와 국경을 넘어, 인간을 이롭게 할 지식을 모으고 나누는 그런 모임. 너희들이 그 일을 해주면 좋겠구나. 내가 다하지 못한 일이 너희 손에서 완성되길 진심으로 응원하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이렇게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눠주니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네. 시공간을 넘어 학문을 나누는 일, 이것이야말로 내가 평생 꿈꾸던 광경 아니겠나.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