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런던 경험 에세이 #1] 유로스타 첫 경험: 짐, 샴페인, 그리고 노이즈 캔슬링
[바람의 런던 경험 에세이 #1] 유로스타 첫 경험: 짐, 샴페인, 그리고 노이즈 캔슬링
유로스타에는 세 종류의 샴페인이 있었다.
하나는 열리지 못했고, 하나는 너무 시끄러웠고, 하나는 결국 파리 숙소에서 조용히 마셨다.
런던 익스피리언스 위크를 마치고 파리로 향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유로스타로 두 시간 남짓. 말만 들으면 꽤 낭만적이다. 세인트 판크라스 인터내셔널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버 해협 아래를 지나, 어느새 파리 북역에 도착한다. 공항도 아니고, 비행기도 아니고, 도시의 중심에서 도시의 중심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유로스타는 분명 매력적인 이동 수단이다.
우리는 조금 일찍 역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영국식 아침을 먹고, 해리 포터의 배경이 된 세인트 판크라스역의 외관을 둘러보았다. 빠뜨리면 아쉬운 2층 테라스에도 올라갔다. 역은 아름다웠고, 여행자는 들떠 있었고, 파리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됐다.
물론 그때까지는 몰랐다.
유로스타의 첫 관문이 여권이 아니라 허리라는 것을.
출발 시간 약 한 시간 반 전부터 안내원들이 열차 번호와 시간을 적은 팻말을 들고 승객들의 동선을 유도했다. 그 사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유로스타는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지만, 영국은 이제 EU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여권 심사와 짐 검사가 있다.
여권 심사는 어렵지 않았다. 기계에 여권을 스캔하고, 얼굴을 확인하고, 몇 번의 절차를 거치면 된다. 문제는 여권이 아니라 짐이었다.
우리의 트렁크는 최소 25킬로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 짐을 허리 높이 이상의 검사대 위로 직접 들어 올려야 했다. 대형 바구니가 있긴 했다. 하지만 바구니가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바구니 안에 짐을 넣으려면, 일단 그 무거운 트렁크를 내 힘으로 들어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의 낭만은 종종 짐의 무게 앞에서 현실이 된다.
물론 유럽인과 영국인의 체형을 기준으로 설계된 듯한 높이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무사히 짐을 올렸고, 검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 연약한 할머니들, 어린 학생들, 작은 체구의 여행자들, 그리고 대형 트렁크 두 개를 끌고 온 사람들. 그들에게 유로스타는 기차가 아니라 일종의 데드리프트 테스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대형 트렁크 두 개씩을 든 한국인 커플을 보았다.
그들이 무사히 파리에 도착했기를 바란다.
그리고 허리도 무사했기를 바란다.
짐 검사를 통과하고 나니 작은 면세점이 나왔다.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공간은 묘하게 설렜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기차에서 샴페인 한 잔을 마시면 어떨까.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샴페인이라니, 그림은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파리 북역에서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
샴페인은 다음으로 미뤘다.
기차는 탑승 약 30분 전에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열었다. 우리는 예약한 8호차에 무사히 올랐다. 다시 트렁크를 들고, 끌고, 밀고, 좌석 주변의 공간에 잘 배치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나름 치밀한 계획의 일부였다. 유로스타를 예약할 때부터 좌석 방향과 짐과의 거리를 고려했다. 우리는 기차 진행 방향의 오른쪽, 순방향 좌석을 골랐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짐과도 가깝게.
계획은 완벽했다.
물론 여행에서 계획이란, 첫 번째 웃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우리 반대편 좌측 테이블석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세 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무척 들떠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모엣 샹동 한 병이 있었다. 파리까지 가는 길에 마주 앉아 샴페인을 마시며 대화하는 것. 그것이 그들 중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였던 모양이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사실 나도 조금 부러웠다.
그들은 호일을 벗기고, 코르크를 열 준비를 했다. 바로 그 순간, 배낭을 멘 트레킹 복장의 가족 네 명이 나타났다.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가족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두 딸. 그들은 조용하고 낮은 톤으로 아주머니들이 앉은 테이블석을 바라보았다. 딸아이가 한 좌석을 가리키며 앉으려 했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 자리가 맞나요?”
이런 장면은 우리도 국내 기차에서 아주 가끔 본다. 누군가의 좌석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장면. 나는 즉시 아내에게 말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저분들, 좌석이 아니라 기차를 잘못 탄 것 같은데?”
아뿔사.
조곤조곤 티켓을 꺼낸 프랑스 가족은 차장을 기다렸고, 샴페인을 열기 직전이던 아주머니 일행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12시 35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탄 줄 알았다고 했다. 문제는 그 기차가 아니었다. 그들이 타야 할 기차는 아직 플랫폼 개찰 시간도 되지 않았거나, 어쩌면 다른 플랫폼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당황하면 예의를 잊을 때가 있다.
그들도 그랬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둥 마는 둥, 그들은 황급히 짐을 챙겨 내렸다. 샴페인을 들고, 가방을 들고, 조금 전까지의 버킷리스트를 수습하며 객차를 빠져나갔다.
샴페인을 두고 갔으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첫 번째 샴페인은 열리지 못했다.
기차는 출발했고, 이제 정말 파리로 향했다. 나는 잠시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식당칸에 가서 125cc 샴페인 한 잔을 사 올까. 바로 옆 식당칸을 둘러보고 자리로 돌아와 아내에게 컨펌을 요청하던 중이었다.
그때, 이번 유로스타 탑승 경험의 최고봉이 등장했다.
객차 뒤쪽에서 갑자기 소란이 밀려왔다. 미니 베일을 한 여성과 친구들 일행이었다. 대략 일곱 명쯤 되어 보였다. 그들은 짐을 들고 들어오며 객차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꾸었다. 두어 칸 앞쪽의 좌우 테이블석을 차지한 뒤, 뒤쪽 객차를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곧 핑크빛 로제 샴페인, 글라스, 딸기와 체리가 등장했다.
아마도 브라이덜 파티를 하러 가는 길인 듯했다. 결혼을 앞둔 친구와 함께 파리 혹은 그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 그런 생각을 하니 처음에는 덩달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여행이란 원래 누군가의 기쁨을 스쳐 지나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마음은 오 분을 넘기지 못했다.
축복의 마음은 빠르게 철회되었다.
그들의 에너지는 객차의 크기를 초과했다. 웃음소리, 대화소리, 자리 이동, 이름 부르기, 다시 웃음소리. 파리 북역까지 가는 내내 그들은 객차를 자신들의 파티 공간처럼 사용했다. 제이슨, 데이비드, 존 같은 이름들이 여러 차례 공중으로 던져졌다. 그 이름들이 실제 남자친구들의 이름인지, 친구들의 이름인지, 아니면 그 순간의 흥을 위한 호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이름들은 도버 해협보다 자주 객차를 건넜다.
그 순간 나는 애플에게 감사했다.
애플이 만든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이 없었다면, 우리는 도버 해협을 건너기도 전에 인간 소음의 해협에서 먼저 침몰했을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 문명이 예민한 여행자에게 내린 작은 구명정이었다.
차장은 몇 번 지나갔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ES 9090 열차 8호차 안에서 소음과 문명 사이의 균형을 지켜낸 모든 유로스타 이용 지구인들에게 마음속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모두의 표정은 거의 같았다. 말은 없었지만, 얼굴에는 공통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 모두 지금 같은 객차에 갇혀 있군요.”
마침내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짐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말쑥하게 생긴 프랑스 청년,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시아인 승객, 프랑스 노부부까지 모두 얼굴에 깊은 피로와 침묵의 분노를 담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공동체였다. 같은 소음을 견딘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무언의 연대가 있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파리 북역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고, 지정된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이동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다시 그 브라이덜 파티 일행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부른 밴이 도착했고, 그들은 또 한 번 우리 앞을 지나갔다.
나는 속으로, 아니 어쩌면 아주 작게 입 밖으로 말했다.
“미친 것들.”
이상하게도 그 말은 욕이라기보다, 파리 북역에 도착한 한 여행자의 생존 보고에 가까웠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파리 시내일까.
샹파뉴일까.
아니면 또 다른 객차, 또 다른 공간, 또 다른 누군가의 노이즈 캔슬링을 시험하러 가는 걸까.
나는 잠시 그들의 목적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목적지였다.
이렇게 우리의 첫 유로스타 경험은 신나고, 무겁고, 시끄럽고, 복합적이었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KTX나 SRT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물론 그것이 더 좋다는 뜻인지, 덜 좋다는 뜻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유로스타는 런던과 파리를 이어줄 뿐 아니라, 각자의 기대와 예의와 소음과 낭만을 한 객차 안에 함께 태운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결혼은 축하한다.
행복하길 바란다.
다른 기차에 탈 뻔했던 그 아주머니들도 무사히 제 기차를 타고, 어딘가에서 샴페인을 즐겁게 마셨기를 바란다.
우리는 파리에 도착한 뒤 봉마르셰 지하의 카브에서 샴페인을 샀다. 객차 안에서는 마시지 못했지만, 숙소에서는 아주 조용하고 품위 있게 마셨다. 그리고 그날의 일을 다시 이야기하며 웃었다.
결국 여행의 기억은 목적지보다 그 사이에서 생긴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두 시간 남짓.
시간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유로스타는 그보다 훨씬 길고, 시끄럽고, 무겁고, 인간적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동 경험은 속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권 심사, 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옆자리 승객의 태도, 객차 안의 소음, 그리고 도착 후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는가까지 모두 경험의 일부다.
유로스타는 런던과 파리를 연결했지만, 그날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두 도시 사이를 이동하던 사람들의 기대와 소음, 그리고 그것을 견디던 조용한 지구인들의 표정이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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