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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pty Feed : 완벽한 AI 앞에서 만년필의 비효율을 사랑하다

입력창에 몇 글자만 넣어도 유려한 글이 쏟아지는 시대. 우리는 왜 손에 잉크를 묻혀가며 낡은 피드를 씻어내고 새로운 시대의 문장을 써 내려가야 할까요? (BARAM 매거진 4월호)
[BARAM Magazine] AI 시대의 언러닝과 비효율의 미학. 짙은 푸른색 잉크가 번진 배경 위로 클래식한 만년필 촉과 잉크병, 중앙에 'The Empty Feed: 완벽한 AI 앞에서 만년필의 비효율을 사랑하다' 타이틀 텍스트가 강조되어 있다. 에디토리얼 매거진 무드.
스크린 너머의 완벽한 효율성 앞에서, 손끝에 번지는 푸른 잉크의 비효율을 기꺼이 사랑하기로 한 우리의 서사.

🖋️ Editor's Letter

구독자 여러분, 오랜만에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 넣으려 피드(Feed)를 세척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흐르는 물에 까맣게 굳어있던 잉크가 번져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문득 우리의 인생과 커리어 역시 이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잉크를 받아들이며 백지 위에 새로운 글과 그림을 그려나가는 삶. 우리는 종종 빛나는 펜촉이나 아름다운 잉크 색상에 매료되지만, 정작 그 잉크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심장부는 펜촉 아래 숨겨진 '피드'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다가오는 AI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지금, 여러분의 낡은 관성을 담고 있는 피드는 어떤 상태인가요? 이번 호에서는 일상의 찰나에서 건져 올린 '세척과 비워냄', 그리고 기꺼이 감내해야 할 '비효율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Unlearning]: 낡은 잉크를 씻어내는 일

만년필에 새로운 색의 잉크를 넣기 전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식이 있다. 바로 기존의 피드를 깨끗하게 세척하는 일이다. 피드는 본래 소모품이지만, 잉크를 바꿀 때마다 매번 새로운 피드로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세척을 게을리한 채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잉크를 주입하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색이 섞이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잉크의 산도(pH) 차이는 미세한 화학 작용을 일으키고, 결국 엉겨 붙은 찌꺼기들이 피드의 모세관을 막아버린다.

이 오묘한 물리적 현상은 우리의 인지 구조와 놀랍도록 맞닿아 있다. 새로운 커리어, 낯선 환경, 혹은 AI라는 전례 없는 도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종종 기존의 '성공 방정식'이라는 낡은 잉크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지식을 주입하려 든다. 하지만 씻겨 나가지 않은 고정관념은 새로운 기술과 충돌하여 인지적 찌꺼기를 만들어내고, 결국 성장의 통로를 막아버린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인간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기존의 관성을 버리는 언러닝(Unlearning)이다.

[Strategic Reset]: Alignment를 위한 의도적 멈춤

브랜드와 오디언스의 관계를 진단하는 BARAM Framework에서도 이 '세척'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의미의 흐름이 어긋나는 낮은 정렬(Low Alignment)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모멘텀(Momentum)의 첫 단추는 언제나 '리셋(Reset)'이다.

Momentum = f(Brand, Audience, Relationship)*Alignment

Momentum =
f(Brand, Audience, Relationship) *Alignment


BARAM Framework

개인의 커리어 전략이나 브랜드의 서사 모두, 과거의 영광에 취해 막혀버린 피드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과감하게 흐르는 물에 지난 관성들을 씻어내고, 완전히 비워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의도적 멈춤'이 필요하다. 잘못된 잉크 찌꺼기가 만들어내는 마찰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의미가 매끄럽게 흘러나올 수 있다.

[Human Experience]: 기꺼이 감내하는 비효율의 서사

잉크를 새로 넣기 위해 아무리 조심해도 결국 손끝에는 검푸른 얼룩이 묻고 만다. 얼른 휴지를 가져와 닦아보지만, 이내 속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기꺼이 감내해야 할 불편이지.'

곧이어 종이 위를 스치는 사각거리는 마찰음. 그리고 이것이 나의 생각인지, 아니면 이 펜촉이 스스로 뱉어내는 문장인지 모를 무언가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창조적 동기화의 기대감 앞에서, 잉크가 묻는 사소한 비효율은 완벽하게 의미를 상실한다. 오히려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가 지금 살아 숨 쉬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적 증명이다.

입력창에 단어 몇 개만 던져 넣으면 유려한 글을 순식간에 뽑아내는 거대한 LLM(대형언어모델) 앞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번거로운 만년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완벽한 효율의 시대에 우리가 굳이 손에 잉크를 묻혀가며 아날로그적 경험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비즈니스와 삶에서 발견해야 하는 가장 빛나는 태도와 철학은, 차가운 데이터의 배열이 아니라 잉크 묻은 손을 씻어내는 우리의 무수한 일상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Lawrence Aritao

💡 BARAM Insight

완벽한 AI 앞에서 피드를 세척한다는 것Unlearning: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주입하기 전, 내 안의 낡은 성공 공식과 고정관념(산도가 다른 잉크)을 씻어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Strategic Reset: 막혀버린 성장의 모멘텀을 다시 흐르게 하려면, 의도적으로 멈추어 스스로를 비워내는 '리셋(Reset)'의 결단이 필요합니다.The Value of Inefficiency: LLM의 효율성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무기는, 사각거리는 펜촉의 마찰음처럼 '기꺼이 감내하는 비효율' 속에 숨겨진 고유한 경험과 통찰입니다.

Epilogue

손끝에 묻은 잉크를 지워내며 바라본 당신의 스크린에는 지금 어떤 텍스트가 깜빡이고 있나요? 오늘 하루쯤은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여러분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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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발행- AI 시대의 브랜드 경험 | The BARAM Frame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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